[리버럴미디어=공소리 기자] 넷플릭스에서 ‘신입사관 구해령’이라는 퓨전 사극 드라마를 유익하게 시청했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라는 직업이 중심적으로 나온다.
극 중 주인공 구해령은 조선 최초의 여사관으로 등장한다. 그녀도, 그녀의 동료·선배들도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남자 주인공(요즘 미인으로 찬사받는 차은우가 맡았다)의 외모 때문에 선택하게 된 드라마라서 가벼운 로맨스물이라고 여기고 부담 없이 시청했는데, 꽤 진지하고 유익하게 만든 드라마였다. 조명되지 않았던, 역사를 쓰는 사관에 대해 알 수 있고, 여운이 남는 내용이었다.
역사학도 출신의 기자가 있다. 그 기자는 항상 굉장히 깊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데, SNS에 올리는 글은 무언가 소명감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처음부터 오늘까지는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아니다.
오늘 곰곰이 기자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하는데, 순간 숨이 막히는 문장이 떠올랐다. ‘기자는 역사를 기사로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역사학도 출신의 기자는 그것을 전부터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몰랐다. 기사는 그저 정보를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수동적인 기사를 써왔던 거다.
언론은 사법, 입법, 행정 다음의 권력이다. 사법, 입법, 행정을 감시하고 통찰하는 역할이기에 권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것을, 그리고 소중한 지금을, 그러니까 역사를 다루기 때문이다.
기사는 다음 세대에게 남길 이야기를 적는 거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제의 일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쓰는 거다.
신입사관구해령이라는 드라마에서 사관은 목숨을 걸고 역사를 기록하는 존재로 나온다. 왕조차 건드릴 수 없는 사관의 존재는 우리에게 자부심을 심어준다.
언론인 즉, 기자는 예문관(조선시대에 국왕의 말이나 명령을 담은 문서의 작성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 사관들이 속해 있다)의 소속된 한림(예문관에 소속된 관원)을 본받겠다는 작심이 필요하다. 어떠한 권력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기사를 쓰는 시민의 자부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