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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큰별이 비추는 시선] 해인사 가는 길


[리버럴미디어=강한별 기자] 속세를 떠나 신성한 진리의 해인사로 향하는 길은 속세의 연속이다. 2018년 새해를 맞아 지난 한 해 동안의 속된 것들을 정리하고 고려 팔만대장경의 기운을 느끼고자 경북 합천에 있는 해인사에 다녀왔다. 수원터미널에서 대전터미널, 해인사터미널까지 두 차례 버스를 타야한다. 속세의 음식들을 챙겨먹고, 틈틈이 기념사진도 빼놓지 않는다.

 


해인사 터미널에서 내려 해인사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서 멧돼지를 마주했다. 산에 먹을 것이 없어진 멧돼지가 민가로 내려와 속세의 음식을 먹는다. 입구에서 분식을 파는 아주머니가 어묵 일곱 개를 멧돼지에게 주고는 “오뎅 일곱 개 먹었으니 칠천 원을 내놓으라” 농을 건넨다. 어묵을 게걸스레 먹고 있는 멧돼지 주변에는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있다.

 


옥수수 파는 할머니의 “두 개 삼천 원인데, 장사가 안 되니 하나에 천 원에 주겠다”는 능숙한 상술에 못 이기고 옥수수를 샀다. 갖가지 양념을 넣고 찐 철지난 옥수수가 맛이 좋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해인사터미널, 의미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오뎅을 먹는 멧돼지, 옥수수 파는 할머니를 지나 해인사에 다다르기 전, 성보박물관 입구에는 반으로 갈라진 불상이 있다. ‘부처상의 보이지 않는 반쪽은 우리에게 감추어진 불성을 내포하며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진솔한 내적 성찰의 무한대를 제시한다’라는 설명. 나는 이 곳에서 진솔하게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을까?

 


해인사로 들어가는 첫 번 째 문, ‘일주문’. 본래 절의 첫 입구는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일심으로써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를 향한 첫발을 내딛는 문이다. 속세를 벗어나기 위한 일주문 앞에도 역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이틈에서 나는 ‘언제쯤 비로소 속세를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님 세계인 불이(不二)의 세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이 있다. ‘불이’는 모든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해탈의 경지다.

 


해인사 입구에는 사람들의 소원들로 가득하다. 무인판매인 기왓장에 소망을 써서 기원하고, 가야산 소원나무에는 각종 소망들이 적혀진 종이들이 걸려있다. ‘좋은 대학 합격하게 해주세요’, ‘장사 대박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등 다양하다. 속세를 떠나 진리를 찾아온 곳에는 세속적인 소원들이 가득하다.

 


해인사는 고요하다. 조용한 물소리와 스님들의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바람이 불 때면 은은한 풍경 소리가 들린다. 속세를 떠나 찾아온 고요하고 신성한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돌아갈 수 있을까?

 


팔만대장경판은 부처님께서 진리의 세계에 대해 차별 없이 말씀하신 법과 그에 대한 주석서를 포함한 일체의 총서를 81,350판에 달하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겨놓은 것이다. 원고 쓰기에 참여한 많은 관료와 문인들은 글씨체가 같아지도록 연습했다고 전해진다. 판각이 끝난 경판은 오류 수정을 위해 한 장씩 찍어 원고와 대조하고, 잘못된 글자는 새로 파내어 아교로 붙여 넣었는데 이 작업이 매우 정교해 수정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막고자 만든 팔만대장경은 관리와 보존을 위해 가까이 볼 수도 없고 사진촬영도 불가능하다. 경판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절을 세 번씩 했다고 하는데서 그들의 숭고한 염원이 느껴진다.

나무 창살 너머로 진정한 참된 진리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경외심을 통해 잠시나마 속세를 잊어본다. 그러나 카메라 렌즈에 담긴 팔만대장경은 가짜다. 속세를 떠나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한 여정은 세속적인 모습들로 가득했다.

잠시나마 참된 진리를 엿보기 위해 해인사를 찾았다. 2018년의 해가 밝았고 나는 다시 속세로 돌아간다. 속세가 아닌 것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곧 속세를 더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내가 사는 동안 세속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내 정신만큼은 팔만대장경에서 느낀 숭고하고 참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 강한별 기자 lelia0904@libera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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