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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획 칼럼6] <시스템 복구 가이드> 상처를 황금으로 잇다: 킨츠기, 그리고 삶을 완성하는 힘

‘청소년의 생명존중 문화확산 및 위기대응체계 구축사업’
경기도청소년상담복지센터, 시·군 센터(광주·부천·안산·오산·용인·의왕·평택·파주),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

 

[김선영 경기도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생명존중TF팀장] ‘킨츠기(Kintsugi, 金継ぎ)’라는 예술이 있다. 한자 뜻 그대로 ‘금을 잇는다’는 의미를 지닌 일본의 전통 도자기 복원 기법이다.

 

귀한 그릇이 깨지면 장인은 조각들을 버리는 대신, 흙과 천연 옻나무 진액을 섞어 부서진 단면을 하나하나 정성껏 이어 붙인다. 사포로 거친 이음새를 다듬은 후, 장인은 마지막 단계에서 얇은 붓으로 황금가루를 뭍혀 도자기의 균열을 따라 정교한 선을 그려 넣는다. 그렇게 복원된 도자기는 처음의 매끄럽고 완벽했던 모습보다 훨씬 더 매혹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깨진 틈새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황금 선으로 당당하게 드러낸 그릇, 킨츠기 작품에서 그 흉터는 감추어야 할 결함이 아니라, 고난을 견뎌내고 다시 태어났다는 증명이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독창적인 예술이 된다.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현대 사회가 숭배하는 미학을 스마트폰 액정 같은 ‘매끄러움’이라는 단어로 포착해 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처 없고, 저항 없고, 결점 없는 매끄러운 상태만을 정상적이자 아름다운 것으로 찬양한다. 그러나 한병철은 고통과 부정성이 거세된 이 매끄러운 세계에는 진정한 예술도, 인간을 움직이는 구원도 없다고 경고한다.

 

진짜 아름다움은 매끄러운 표면을 깨뜨리고 들어와 우리에게 기어이 ‘상처’를 내는 것이다. 그 균열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신의 깊은 심연을 마주하고, 삶의 진짜 의미를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킨츠기는 한병철이 말한 ‘아름다움의 구원’을 완벽하게 시각화한 예술이다.

 

우리는 흔히 삶이 산산조각 났을 때 내 인생은 끝났다고 절망한다. 예기치 못한 비극, 감당할 수 없는 상실, 혹은 사회적 기준에서 낙오되었다는 자책 앞에서 매끄럽던 우리의 일상에는 깊은 금이 간다.

 

흠집 없는 그릇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우리는 상처 입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숨기거나 아예 스스로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이들을 지배하는 고립감은 바로 이 ‘매끄러운 세계에서 나 혼자만 금이 갔다’라는 단절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생지옥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한다.

 

프랭클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동기를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로 보았다.

 

 

삶이 깨지는 시련은 우리의 부서지기 쉬운 거짓 완벽함을 허물고, “이 아픔 속에서 너는 어떤 태도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삶을 킨츠기 예술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깨진 조각들을 일일이 주워 담는 시간은 쓰라리고, 옻칠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균열을 황금으로 메우는 작업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우리가 ‘정상성’이라는 매끄러운 껍데기에 가려 보지 못했던 고유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상처를 입기 전의 무결한 나로 돌아가려는 헛된 희망을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상처 입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틈새에 ‘나만의 고유한 의미’라는 황금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비록 삶이 깨졌을지라도 그것은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매끄러운 소비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무늬를 새길 영성적 기회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상실의 균열에 타인을 향한 깊은 공감의 금을 입히고, 누군가는 실패의 틈새에 자신을 향한 자비와 연민의 금을 입힌다.

 

그렇게 채워진 황금 선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단단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서사가 된다. 고통이라는 상처를 통과하며 얻은 지혜는 그 어떤 흠 없는 그릇보다 고결하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그리고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당신의 그 상처는 부끄러운 결함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인생을 구원하는 황금 선”이라고. “결핍과 시련은 삶의 파멸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가장 독창적인 무늬”라고 말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가혹하게 심판하는 대신, 킨츠기 장인의 마음으로 깨진 조각을 다시 이어 붙일 때 삶은 비로소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을 막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깨진 삶을 직면하고, 그 상처를 통해 다시 가치 있는 작품으로 복원할 수 있도록 곁에서 기꺼이 시간을 공유하며 황금을 제공하는 과정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오히려 덜 완벽할수록 좋다. 매끄러운 표면이 깨진 그 틈으로 비로소 당신만의 고유한 빛이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이라는 도자기에 새겨진 상처는, 당신을 구원할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황금 선으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