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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용인댁 삼 형제와 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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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미디어=염세훈 칼럼니스트] 용인댁에는 인구, 흥구, 지구 삼 형제가 살고 있다.

 

김용인씨는 남편의 범죄로 인해, 옥바라지를 하며 힘겹게 홀로 삼 형제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 혼자서 하나도 아닌 세 명의 자식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듯 앞이 창창한 아이들에게 좀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어 이혼을 결심하고, 능력 좋은 새아버지 B씨를 집에 들이게 되었다.

 

B씨는 두 동생을 변호사와 의사로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장남 인구씨에게 유독 애정을 가졌다. 그는 인구씨에게 앞으로는 너의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며 굳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변호사인 흥구씨와 의사인 막내 지구씨에게 애정이 갔다. 순박한 장남보다는 눈치 빠른 차남과 총명한 막내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B씨는 두 동생에게 우리 집안의 기둥이라며, 고급 승용차와 사무실, 병원을 차려주고 함께 행복해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인구씨는 오히려 뿌듯했다.

 

‘흥구와 지구에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해결해주는 든든한 아버지가 생겼다!’

 

흔들렸던 집안이 자리를 잡아갔고, 조금만 더 지나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으로 인구씨는 매일 행복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러나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면서 인구씨의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그 집에 계부 들어왔잖어~ 아니 글쎄 인구는 내팽개치고 자기네들끼리 먹고 살 궁리하던데?”

“그러게 말이야~ 그러고 보니 B씨 말로는 어디 용한 작명소에서 이름 지어 왔다고 인구 이름을 진구로 바꿀 거라던데? 진구가 뭐야 진구가 껄껄껄”

 

순박한 인구 씨 마음에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B씨를 ‘흥구 아빠’로, 인구씨를 ‘진구’로 부르는 횟수가 잦아들면서 희망은 점점 분노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인구씨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자신이 그토록 꿈꿔왔던 회사에서 인구씨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인구씨는 서둘러 이 기쁜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때, ‘흥구 아빠’가 믿기 힘든 말을 인구씨에게 한다.

 

“인구야, 옆 동네 안성댁의 아들도 그 회사 가고 싶어 하니까 네가 같이 좀 데려가서 취직 좀 시켜줘라~”

 

인구씨는 당황스러웠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침착하고 예의 있게 죄송한 마음을 담아 답변한다.

 

“아버님,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누구 챙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제가 자리 잡고 능력이 생기면 그때 꼭 책임지고 취직 시키겠습니다!”

“뭐!? 너는 지금 혼자 먹고살겠단 거야? 아니 무슨 이런 놈이 다 있어? 그 집 아들내미 데려갈 자신 없으면 너 그 회사 들어가지 마! 내가 그 회사에다가 전화해볼 테니까 너는 잠자코 있어!”

 

인구씨는 절망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생떼를 그 회사에다가 한다고 하니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그동안 가족을 꽃피우기 위해서 스스로 거름이 되었던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는 가족을 위해 헌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헌신은 B씨의 생각을 이행하는 도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가족을 위해서 거름이 되길 마다하지 않고 자처했을 뿐인데… 이제는 똥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있구나…’

 

흥구씨와 지구씨의 꿈을 위해서 지원을 마다하지 않고 대신 싸워주던 B씨가, 인구씨의 꿈 앞에서 남의 집 자식의 꿈을 위해 희생하라니…….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여기까지가 그동안 인구씨에게 벌어진 믿지 못할 이야기다.

 

인구씨는 자신의 희생에 공감해 주고, 자신의 생각과 말을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자신의 방에 동생들의 쓰레기를 둬도, 자신의 차를 뺏고, 주변에서 진구라고 조롱해도, B 씨가 가족으로 생각만 해주었다면 인구 씨는 행복했을 순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B씨는 이 쉬운 방법을 놔두고, 거짓말을 조금 보탠 빈약한 논리로 아직도 인구씨에게 세상으로 나갈 때가 아니라고 한다.

 

삼 형제와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지인으로서 B씨께 조금이나마 조언을 드리고 싶다.

 

인구씨는 피하나 섞이지 않은 당신을 아버지로 인정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인구씨를 가슴으로 낳고, 장남으로 살아온 그간의 희생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존중은 어려운 게 아니다. 그저 가끔 장남의 속마음을 헤아려 대신 말해줄 수 있으면 된다. 그래야 ‘흥구 아빠’라는 오명을 벗고 ‘용인댁의 가장’으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인구씨는 오늘도 아빠의 품이 그립다…….